본문 바로가기

설법이야기

[스크랩] 갈애 [渴愛]

안이비설신의 6근을 제어하면

괴로움 물리치고 해탈에 이르러

누구나 행복하고 화평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이루기엔 쉽지 않다. 행복한 삶의 조건은 자신의 분수에 맞는,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다. 하지만 중생들의 욕심은 집착으로 확장되고, 집착은 갈애(渴愛)로 고착되면서 삶이 괴롭고 그것은 또 다른 태어남을 여는 업력이 된다. 갈애는 삶을 메마르고 황폐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작용하는 갈애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몸부림칠수록 빠져드는 수렁처럼 중생들을 얽매게 하는 것이 갈애의 속성이다.

갈애(渴愛, tr.s.n.a-)는 어원적으로 동사 ‘목마르다’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목마른 사람이 아지랑이를 물이라고 여기고 쫓아가는 것처럼 강렬한 애착을 갖는 것을 말한다. 욕망을 만족시키고자하는 마음의 강렬함을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탐욕스러운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번뇌의 바탕이 되고 윤회를 반복하게 하는 원인인 욕망의 총칭이다. 욕망은 재산. 명예 등의 물질적 정신적 욕망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에 고통 없는 천국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도 포함된다.

<초전법륜경> ‘집성제’에서는 “비구들이여, 집성제(集聖諦)란 무엇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고 만족을 찾는 것이다. 무엇이 갈애인가? 그것은 세 가지가 있는데,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라고 가르침을 전한다.

갈애는 감각적 욕망의 대상에 대한 갈애(慾愛 ka-ma--tan.ha-)로 재욕(財欲).성욕(性欲).식욕(食欲).명예욕(名譽欲).수면욕(睡眠欲) 등으로, 다섯가지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끝없는 갈증을 느끼지만 결코 멈추거나 쉬지 않는 집착의 마음이다. 다섯 욕망은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귀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며, 코로 향기로운 것만 맡으려고 하고, 혀로 맛있는 음식만 맛보려고 하며, 몸은 부드러운 것만 감촉하려는 욕구이다.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bhava-tan.ha-)는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상견(常見)을 지니고 영원한 존재를 갈망하는 것이다. 죽음 다음 세계에 윤회하는 주체자인 자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천국이 있다거나 우리들의 운명을 조정하고 결정하는 절대자가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n.ha-)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斷見)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음을 갈망하는 것이다. 인과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모든 행위를 극단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갈애는 보이는 것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마음현상에 대한 갈애로 감관에 따라 여섯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하여 거북이의 사지를 노리는 재칼의 비유가 있다. 거북이가 사지와 목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내밀면 바로 그것을 붙잡아 끄집어내 먹듯이 여섯 감관을 통해 갈애에 붙잡히는 순간 괴로움의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갈애란 눈.귀.코.혀.몸.마음으로 와 닿는 현상들을 즐겁거나 기분 좋은 것으로 간주하여 탐닉할 때 생겨난다. 따라서 갈애는 6근의 제어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을 무상하다고 보고, 괴로움으로 보고, 무아라고 보고, 질병과 같은 것으로 보고, 두려움으로 본다면 그들은 갈애를 제거한다”고 했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한 살핌을 통해서 갈애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집착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갈애를 굴려 해탈을 이룰 수 있는 수행의 길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